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의 철도 환경 (문단 편집) === 식민궤도 === 철도가 본격적으로 일본 곳곳에 부설되던 시기, [[홋카이도]]에서는 정착민들의 편의와, 생산물의 빠른 운반을 위해 각 지역에 식민궤도(척식궤도)라는 철도들이 부설되었다. 당시의 홋카이도의 도로 사정은 그야말로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고, 습지[* 특히 홋카이도 동부 지역의 경우 이러한 습지가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쿠시로 습원이었다.] 같은 험한 지형들이 산재해있어서 철도가 절실한 곳이 많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철도를 마구 부설하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에, '''그냥 굴러만 갈 정도로''' 최소한의 조건 만을 갖춘 철도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식민궤도다. 식민궤도의 경우 식민궤도는 궤도법이나 지방철도법을 적용하지 않고 762mm, 610mm 등 일본에서 흔히 쓰던 케이프 궤간(1,067mm)보다 더 좁은 협궤를 썼으며, 들어가는 기관차들도 단량 가솔린 동차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마차 철도나 [[수압식 철도]]까지도 있었다. 여기에 신호나 폐색시설도 없거나 최소한만 있었고 다이어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기도 했었다. 운영의 경우에도 [[기초자치단체]]([[시정촌]])에서 맡았다. 간혹 [[경전철]]과 혼동하는 경우도 많은데, 경전철의 목적은 버스보다는 많고 [[중전철]]보다는 적은 수요가 있는 곳에 투입되고, 일반적인 철도와 거의 동일한 장비를 갖추고 있어 적어도 규격화된 운행이 가능하다. 이후 태평양 전쟁을 거쳐 일부는 디젤 동차나 기관차를 도입하고 선로와 장비도 개량되어 운행을 계속한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동차의 보급과 도로망 정비로 인해 폐지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70년에는 국가에서 지원하던 보조금도 중단되어 1972년 하마나카 정영궤도가 폐선되면서 식민궤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2018년에는 홋카이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